길 따라, 물 따라 걸어가는 마을 이야기

수리치골 성모성지가 있는 봉갑리, 청양장과 유구장을 오가던 삽바골 이야기

sinpunglife 2026. 6. 7. 12:25

  봉갑리는 갑파천 상류에 있다. 봉황의 기운이 깃든 으뜸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산이 깊고 가파르며, 산의 위쪽에 자리잡고 있어서 예전에는 상가패라고 불렸다. 봉암, 봉곡 등 마을 안의 자연부락의 이름만 봐도 산이 깊고, 돌이 많은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봉암, 청양 방면으로 바로 앞이 참나무골, 도덕골, 줄바위, 능골, 할매바위가 있다. 수치치골 가는 방향으로 바로 앞이 봉곡이다.

 

마을의 중심인 봉암은 봉황이 내려앉은 바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봉암의 중심에는 마을회관과 자불백련사라는 절이 자리잡고 있다.

 

할아버지 바위

할아버지 바위와 할매바위 사이에 두개 산은 바위로 이어져 있었고, 중간에 오래된 느티나무와 성황당이 있었다. 청양쪽으로 이어지는 도로 공사 중에 바위를 쪼개고, 느티나무도 없어졌다. 따라서 지금은 한쪽 산에 할아버지 바위, 중간에 도로, 반대편에 할머니 바위가 있다.

할매바위
돌탑

이 마을은 여기저기 돌탑이 많이 보인다. 그만큼 척박했던 땅이었음을 말해준다. 천수답이었던 예전에는 논 농사가 부족해서 콩과 여름에나 심어도 되는 메밀 농사가 많았다고 한다.

 

 

봉갑리, 수리치골 성모성지 안내도

국사봉 아래의 수리치골은 수리치라는 취나물이 많이 나는 아름답고 깊숙하면서도 넓은 터를 잡아 만들어진 곳이다. 조선 조정의 박해가 심했던 시기에 국사봉을 중심으로 둠벙이용수골덤티진밭먹방이 등 교우촌이 있었고, 그중 수리치골이 가장 깊숙하고 넓어 많은 교우가 모여 살았다고 전해진다. 

봉갑리, 수리치골, 성모상
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1846 11 2일 수리치골에서 성모성심회가 창립되었다고 한다. 1년내내 특히, 봄과 가을의 주말에는 이곳을 방문하는 차량이 줄을 이어 마을을 지나간다. 2027년에는 로마교황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어서, 향후 사람들의 발길이 더 북적이게 될것으로 예상된다.

 

금광탐사 흔적지

  전국 곳곳의 국사봉은 보통 승려, 도인, 혹은 정신적 지도자 등 사람과 연결된 장소이며, 국사(國師)는 나라의 스승, 또는 왕이 인정한 고승을 의미한다신풍면 국사봉과 관련된 옛이야기로는, 옛날 궁에서 가르치던 왕자가 죽자 궁을 떠나는 국사에게 왕이 준 금 한잎을 국사가 이 산에 묻고 살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실제로 국사봉 아래에는 일제시대에 금을 캐던 금광이 여러곳 있다.

 

삽바골은 봉갑리와 조평리를 오가는 길이다. 삽바골이라는 이름은 삽처럼 생긴 골짜기란 뜻으로 추측된다. 조선 후기~근대까지 이어진 대표적인 지역 장시(시장) 이동 경로 중의 하나가 청양장과 유구장이다. 매달 1일과 5일에 공주장이 파하고 나면, 사람들은 2일과 7일에 열리는 청양장으로 이동하고, 3일과 8일에 열리는 유구장에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봉갑리를 통과해야 했다. 그래서 봉갑리는 늘 오가는 사람들이 많고 주막이 3개나 있는 큰 마을이었으며, 주막거리 근처에서는 술 취한 사람들의 다툼을 늘상 볼 수 있는 마을이었다.

새벽에 같이 넘던 길”, 청양장에서 유구장으로 가려면 아주 이른 새벽에 출발해야 했다. 먼저 가는 사람 뒤를 붙어서 가고, 모르는 사람끼리도 하루 동행이 되는 경우 많다. 어두운 새벽이나 안개 낀 날, 사람이 길을 헷갈릴 때는 소가 알아서 먼저 삽바골 길로 들어섰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단순한 미담이 아니라, 그만큼 오랫동안 반복된 이동 경로였다는 증거이다. , 계속 같은 길을 다니다가 혼인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고, 워낙 인적이 드문 산길이어서, 비가 오면 넘어가지 못하기도 하고, 무서운 이야기와 괴담도 있는 길이다.

줄바위

봉갑리의 줄바위는 산을 넘어 아랫동네까지 바위가 줄줄이 이어져 있다. 그래서 마을의 이름도 줄바위라고 지어졌다.